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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말모이 작전 - "금지된 것을 모으다." 3804쪽 16만4125개 단어 최초의 큰 말 사전의 원고- 본문

[상식] 알아야 좋다

[상식]말모이 작전 - "금지된 것을 모으다." 3804쪽 16만4125개 단어 최초의 큰 말 사전의 원고-

플라스틱연필 2018. 12. 18. 13:45


지구상 현존하는 언어는 약 3천여 개로 알여져 있다.

이 중 고유어 사전을 있는 언어는 20여 개에 불과한 실정,

말모이에서부터 비롯된 조선의 큰 사전의 의의는

말그대로 "대단"하다 하겠다.


조선말큰사전 원고 자료




한글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국어"로써 인정을 받았을까?

그리고 "우리말 사전"은 언제 처음 나왔을까?



1446년(세종28년) 훈민정음 반포(10월9일)되고, 1894년 고종은 한글을 우리말 공식 문자로 선포하면서 한글이 "국어"로서의 역사가 시작된다.

(- 1446년 음력으로 9월에 반포되었지만 이후 그레고리력(양력)으로 날짜를 따져서 10월9일이 되었다. 음력이냐 양력이냐를 두고 마누라와 다투던 중 알아본 내용)


공식 문자가 되었지만 한글의 효과적인 사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글 표기의 공통된 기준이 시급하였다.


19세기 말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어 학습을 위해 발간한 다양한 이중어사전은 우리말 사전 발간에 자극이 되었다.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인 ‘말모이’(1910년대)를 시작으로 『조선어사전』(1938), 『큰사전』(1957) 등 본격적인 사전이 출간되는 등....



이 글에서 언급된 말모이...


1911년 편찬을 시작한 말모이 사전과, 1929년 국민들이 나서서 제작에 참여한 말모이작전

이 포스팅은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인 "말모이"와 "말모이작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말(馬)이 먹는 모이가 아니다. "말모이"는 "사전"을 우리말로 다듬은 새로운 토박이 말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1911년의 말모이 :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집필한 첫 우리말 사전 원고로 최종적으로 출판되지 못하였다. 

표제항 ‘ㄱ’부터 ‘걀죽’ 까지의 원고만 남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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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일제치하 '말모이 사전'


왼쪽은 1911년 작성한 말모이원고 / 오른쪽은 조선어학회가 작성한 조선말큰사전 원고


말모이 사전은 1911년부터 편찬되기 시작했지만 출판되지는 못했다.

조선광문회에서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민족주의적 애국계몽의 수단으로 편찬한 현대적인 국어사전이다.

하지만 1911년부터 편찬이 시작되어 거의 원고가 마무리되었으나 편찬자들의 사망 또는 망명 등으로 출판되지 못하고 현재는 그 원고의 일부가 남아있다.

청색의 240자의 원고지로 모두 153쪽이 전해진다.






관련인물

주시경, 周時經

국어학자(1876∼1914). 일명 한힌샘·백천(白泉). 배재 학당(培材學堂)을 졸업하고 독립 신문사 교정원으로 일함. 1907년 국문 연구소(國文硏究所) 연구 위원이 되어, 우리말과 글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체계를 세워 국어학 중흥의 선구가 됨. 저서에 `국어 문법', `국어 문전 음학(國語文典音學)', `말의 소리' 등이 있음.





1929년 일제 문화통치의 시기 '말모이 작전'

영화 '말모이'의 배경은 1940년대 해방전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 전후가 아닐까 한다. 

일본은 정신적으로 조선인을 일본화 하려는 정책을 추진하던 문화통시 시기였다.

(이시대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설민석 선생의 동영상을 추천한다.)



주시경의 제자들은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사전이 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조선어사전편찬부를 두고 학자들이 사전 편찬 사업을 진행했다.

당시 한글날 기념식장에서 108명의 발기로 시작된 조선어사전편찬회는 맞춤법통일, 표준어, 외래어 표기법등 사전을 편찬하기 위한 밑작업 진행하던 중... 

국민과 함께 외세에 흔들리지 않고 민족성을 유지하기 위한 아주 아주 특별한 작전하나를 계획한다.


세상 모든 조선말을 모아라!

사전을 편찬하고자 말을 모으는 작전을 펼쳤다.

옛말, 방언, 새말, 전문어, 고유명사로 구분해서 말을 모았는데..


옛말은 쓰임새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사용 예를 모으고, 방언은 지역별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를 살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언을 꼼꼼히 조사한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방언을 수집하는 일에는 14개 학교의 500여명의 초·중학생이 참여해서 이른바 "시골말 캐기" 작전을 전개했다.

이 작전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대화를 곱씹으며 일일이 적어서 기록하고 주석을 달아서 참여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국 각 지역의 부녀자들이 일상생활에 쓰이는 말을 활자로 남기려고 노력을 정도로 전 국민들이 참여해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1933년 조선어사전위원회가 조직되었고,1936년 표준어발표회를 개최하며 표준어 6111개를 확정 발표했다. 

(표준어 사정범위에 든 9412개의 말 중 6111개 확정)


하지만...

1930년대 후반 일제는 식민통치를 강화하고 있었다.

(이 역시 위의 설민석 강사의 강의 참고)


창씨개명, 일본어교육정책 등 조선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는데.. 1942년 함흥영생고등학교 학생 '박영옥'이 기차안에서 친구들과 조선말로 이야기하던 도중 조선인출신 경찰관인 야스다에게 발각되어 취조를 받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의 취조 과정에서 말모이작전이 발각되고, 조선어학회가 민족주의단체로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일제는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을 검거할 수 있게 되는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이 벌어진다. 


조선어학회 구성원


이렇게 일제의 탄압으로 말모이작전의 모든 자료들은 압수당하고, 압수당한 원고는 고등법원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해방 후 1945년 9월8일 경성역(지금의 구서울역사)에서 말모이작전의 원고가 발견된다.

당시 경성역장은 조선통운의 창고에서 낡은 상자를 발견하게 되는데... 상자안에는 종이 뭉치가 나오게 된다.

26,500여쪽에 달하는 편지였는데, 이것이 바로 말모이작전의 원고 였다.


경성역(서울역)



발견되기 3년 전 일본경찰이 고등법원으로 증거물을 옮기던 중 잃어버리게 되고 그 원고의 일부를 찾게된 것이다.


이 원고를 바탕으로 또다시 국어학자와 전국민이 나서서 완성해갔고, 결국 1947년 10월9일 [조선말 큰 사전] 첫권을 출판하고, 10년뒤 6.25 전쟁을 딛고 1957년 전 6권을 완간하기에 이른다.


이리하여 ... 3804쪽에 달하는 16만4125개의 단어가 실린 최초의 큰 말 사전이 탄생했다.






영화 '말모이'는 이 과정을 다룬 영화로 금지된 시기에 금지된 것을 모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의 것을 지키려는 자의 이야기인 것 같다.

정확한 것은 봐야 알 것 같다.




오늘 시사회에 간다.


영화 이야기는 시사회를 다녀와서 계속 쓰도록 하겠다.







뽀너스


이건 MBC방송의 "서프라이즈"가 다룬 말모이작전 유튜브동영상




역사채널e의 말모이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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